짧은생각들

IICD, 군대

고상 2011. 1. 14. 04:43


  IICD에서 생활한지 벌써 2달이나 되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것 만큼 즐거운 생활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하려고 애쓰면서 지내고 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서 가끔씩 주변 아이들과 평가하곤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남자들 입에서 이곳 생활은 꼭 군생활 같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우스갯 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카투사로 군복무를 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미국식 생활이어서 그런지 비교할만한 게 많다.

 먼저 규칙적인 식사,청소 시간이다. 아침마다 30분 정도 각자 구역을 나눠서 청소를 한다. 마치 아침마다 일어나서  PT를 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던 것처럼 여기도 청소를 하고 나서 하루가 시작된다. 청소의 방식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보통 부엌을 청소한다고 하면 세제로 닦고 물로 깨끗하게 씻어 내리는 방식이지만, 여기서는 조그만 통에 물과 세제를 담아서 대걸레로 청소를 하고 건조시킨다. 두번째 유사점은 숙소 이다. 지금 학교에서 묵고있는 숙소가 예전에 Camp jackson에 있었을 때 썼던 숙소와 상당히 비슷하다. 두개의 방이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하는 구조이고 흰색 벽돌은 군대의 것과 완전 일치한다. 크기는 내가 자대에서 썼던 방과 비슷하다. 세번째로는 일주일에 한번씩 번거로운 일이 있다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매주 목요일 마다 Sergeant time training이라는 다소 힘든 일정이 있었다. 매주 다른 훈련을 하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그것에 대해서 평가했다. 여기는 school Friday 라는 날이 있다. 말 그대로 매주 금요일에 하는 일인데, 학교 내에 필요한 작업이 있으면 업무 분담을 해서 다같이 작업을 하는 일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물탱크를 만들었었고, 조금 있으면 태양열 집열기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다른 핑계를 대서 편하게 쉴 수 없을까 하고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도 군대와 똑같다. 네번째 군대와 IICD 생활의 유사점은 단체 안에서의 생활이 무척 답답하다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IICD가 군대보다 더 답답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카투사로 군복무를 했던 까닭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부대 밖으로 외출할 수 있었고 주말마다 시내로 놀러가거나 집으로 외박을 갔었다. IICD는 미시간 시골 마을 옆에 위치해있다. 어디를 가던지 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고 키를 받는것도 번거롭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주말에만 나가서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대형몰에서 쇼핑을 하고 밥을 먹는다. 사실상 주말에만 외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많이 답답하다. 마지막으로 군생활과 지금의 가장 유사한점은 단체 밖 활동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군대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훈련을 나가고 여기서는 다른 지역으로 펀드레이징을 나간다. 훈련 기간과 마찬가지로 2주 정도 펀드레이징을 나갈 때도 있고 한달 간 갈 때도 있다. 펀드레이징 기간중에는 하루 하루가 굉장히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 일찍일어나서 하루종일 마트 앞에 서있다가 저녁 늦게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지만, 이생각 저생각 하며 일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 간다. 근데 정작 펀드레이징이 끝나는 날짜는 아무리 기다려도 잘 오지 않는다. 마치 훈련 끝나는 날짜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것처럼 펀드레이징 기간 중의 심정은 훈련중에 느끼는 것과 비슷 하다. 스쿨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것을 체험하면서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도 펀드레이징과 훈련과의 유사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IICD와 군생활의 유사점이었다. 이제는 한가지 차이점을 써보고 싶다. 내게 있어서 군생활은 정말 소중했던 경험이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친구도 있었고 함께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서로 믿으면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굉장히 편안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있게 내 의견을 제시 할 수도 있었고 서로 존중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의 차이가 있었을 때도 아무런 갈등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IICD 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특히 팀 내에서의 믿음, 신뢰가 존재 하지 않는 상황이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 두어명이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면 분명히 충돌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일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신이 나질 않는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경험의 양의 차이, 성격의 차이가 팀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일 수도 있는 큰 벽을 쌓고 있다. 그리고 팀원 각각이 나만 내일 하면 혹은 우리만 잘하면 나머진 상관없어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때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일은 어떻게 하겠지만 열정이 생기지 않고,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군생활이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생활은 각자에게 스트레스와 외로움만 주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있는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목표가 있으면 이루려 노력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나아지도록 시도를 해볼 것이다. 군대와 IICD 에서의 내 위치,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은 역시 또 비슷한 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