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프리젠테이션
대략 삼십분
정도 전에 떠오른 따끈따끈한 생각이다. 굉장히 인상이 깊었기에, 식기 전에 빨리 글로 옴겨 놓으려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학교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주제는 UN에서 시행하고 있는 Millenium Development Goal 이 Mozambique 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MDG (Millenium Development Goal)는 빈곤, 교육, AIDS, 인권, 환경 등 8 가지 소주제
로 구성되어 있고, 2015년 까지 각각의 소주제들이 미리 계획한 수치 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 로 하고 있다. 대략 3일 정도의 시간 동안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했다.
처음에 자료 조사를 통해서 MDG 2010 in
Mozambique report를 찾을 수 있었다. 110 page 분량의 report에서 발표할 내용을 요약하고 그래프들을 오려서 keynote에 옴겨서 큰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표할 때 앞에서
말할 스크립트를 따로 만들었고 외워서 발표하려고 했다. 비교적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여유있게 준비를 했기에, 꽤 괜찮은 프레젠테이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IICD에서 여러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서 이번에도 역시 발표 후에 칭찬과 박수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몇가지 간과 했던 사실과 몰랐던 것들이 발표를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만들었다.
첫번째는 내가 지금까지 스크립트 없이 했던 영어 발표는 전부다 20분 미만 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군부대에 있을때
수백명의 미군들을 대상으로 theater에서 했었던 내 첫번 영어 프리젠테이션은 동영상을 포함해서 채 10분이 되질 않았었고 (발표 직전의 온몸의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IICD 에서 했던 스크립트 없는 발표는 전부 길어야 15분 안밖이었다. 1시간 짜리 발표를 학교에서
한번, KASC 에서 한번 했었지만 그때 마다 스크립트를 보고 읽거나 아니면 발표 이외의 파트를 맡았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프레젠테이션은 한시간
정도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많은 그래프와 표를 넣었으니 그정도는 될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삼십분 정도 후에 내 프레젠테이션은 끝나 버렸다. 어설프게 외웠던 문장들은 관련된 내용과 함께 기억 너머로 사라졌고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내용은 날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앞에서 위축된 상태로 슬라이드 넘기기에만 급급했고 시계는 한번도 보지도 않았다. 나름 경험 많은 프리젠터라고 생각했었는데 부끄러울 따름이다.
두번째는 프레젠테이션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 때 이쁜 글씨체,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화면 전환 같은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좀 더 참신한 방법을 찾아서 디자인 하는 것을 좋아 하고, 그게 내가 Power point 대신에 keynote를 쓰는 이유다. 그래서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때도 슬라이드의 모양과 구성 그리고
그 연결성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내가 한가지 몰랐던 것이 있다. (‘간과’ 라고 하기보다는 ‘몰랐다’ 라는 표현이 맞는 듯 하다).
발표가 끝나고 Anthony가 지적한 것인데, 프레젠테이션은 듣는 사람에게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포인트를 남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1,2분 뒤면 잊어 버릴 만한 것이 아닌, 시청자가 이해하고 얻을 수 있을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 프레젠테이션은
그저 단순한 그래프와 그에 대한 설명의 나열에 불과 했다. 수십가지의 단순 사실의 나열 보다는 한가지를 논리 있게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그저그런 그림과 숫자 보다는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사실 한가지가 더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John형의 비판을 받았을 때는 분량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질구질한 변명을 하면서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 발표는 전혀
매력적이지도, 유용하지도 못했다. 발표가 끝나고 영어 Debate 에서 지적 받았던 것들이 생각났다. 주장(Argument)이 있으면 그에대한 이유(Reason)가 있어야하고
그리고 예시(Example)를 제시해야 한다.
오전 청소 시간 내내 아침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했다.
오랜만에 들었던 쓴소리라서 표정이 풀어지지가 않았다. 만약에 다시 발표를 하게 된다면 어떤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보는 이들을 혼란 스럽게
만들 수 있는 용어 들의 정의 부터 시작해서 상황에 대한 적절한 설명, 주목할 사실에 대한 강조 등 얼마든지 설명할 것들을 만들 수 있다. 시간
배분은 연습을 통해서 해결 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연습이 필수적이다. 많은 사람 앞에 섰을때 생기는 긴장감, 위축되는 느낌 등은 연습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는 손을 배배 꼬으면서 발표를 했다. 종종 내손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구나 라는게 느껴져서 의식적으로 허리에
손을 얹으려고 하기도 했다. 다음 슬라이드에 뭐가 나올지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준비가 부족해서 그게 몸짓으로 나타난 듯 하다. 스티브 잡스 도
신제품을 위한 발표를 위해서 완벽하게 준비 될 때까지 수이 준비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분명 준비가 부족했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마 내 성격상, 잘하지 못해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 생활을 하면서, 공연 하면서, 군대에서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비교적 편해졌고 좀 잘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발표를 하고 발표 콜렉션(발표 자료들을 모아 놓는다)을 하나 늘리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실패 했고 (실패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비판을 들었다), 내 발표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잘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 보다 실패하고 비판 받았을 때 훨씬 배우는게 많다는 걸 알았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좀 젊을 때는 성공을 많이 하는 것 보다 실패를 많이 하는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IICD 에서의 발표는 누구도 그 발표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기회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들은 생각은 여기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나를 크게 성장 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실패의 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