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들
언어표현을 통해서 추측해 본 문화의 차이
고상
2010. 12. 20. 11:31
올 여름에 한미학생회의에 참가하면서 많은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게 있으면 바로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가끔씩 직접 번역이 안되는 표현들이 있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노리끼리하다', '붉으스레하다' 이런 것 말고도 있을 것 같았는데 없는 그런 표현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예를 들자면 '귀찮아', '답답해' 등이 있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그 사회의 사람들의 의식이나 습관 등을 반영하니까, '답답해' 라는 표현이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답답한 건 아닐까? '귀찮아' 라는건 '싫어' 라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한 말이다. 한국이 영어권 국가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꺼리는 사회이기 때문에 '귀찮아' 라는 표현이 생긴건 아닐까? 물론 이런 추측은 이미 한국과 미국의 문화의 차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역추측이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졌을 표현을 가지고 지금 사회의 성격을 논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내가 지금 알고 있는 언어가 영어,한국어 뿐이기 때문에 단 두개의 언어에서 관찰한 것을 가지고 언어와 문화의 관계에 대해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요소들은 접어두고 한번 생각을 해보고 싶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병 때 였나, 서전타임트레이닝 이라는 매주 목요일 마다 하는 훈련시간 중이었다. 미군부대는 3,4 시간 훈련을 하고 나서도 훈련에 대한 평가를 한다. AAR (After Action Review) 라고 하는데, 각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한마디씩 나서서 그날 한 훈련에 대한 장단점, 개선점 등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당시 이병이어서 영어 말하기는 커녕 듣기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그냥 구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미군보다 카투사 숫자가 더 많았지만 나서서 말을 하는 카투사는 아무도 없었다. 영어가 안되서 그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는 병장도 있었고 ( 병장쯤 되면 기본적으로 한두마디 정도는 할 능력이 생긴다),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도 있었다. 카투사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자 미군들도 카투사가 얘기 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그제서야 태국에서 살다 왔던 상병 한명이 짤막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 했다.
또다른 이야기는 내가 병장 때 이야기다. 영화관에서 행사를 하고 나서 영화관 옆에서 소화기 쓰는 법에 대한 시범이 있었다. 미군 조교의 간단한 시범 후에 자원자를 받았다. 몇명의 미군이 자원해서 장난 치듯이 소화기 시범을 보였다. 대다수의 카투사들은 나서지 않고 웃으면서 구경만 했다. 그중에 한 카투사가 손들고 자원해서 나갔다. " 쟤 또 나선다 ", " 오바 한다 또 " 같은 반응이 주위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나서기 좋아하는 애 였기 때문에 주위에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위의 이야기에서 처럼 한국사회에서 앞에 나서는 것, 자기 생각을 앞에 나가서 발표 하는 것은 조금 어색한 행동으로 받아 들여진다. 특히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건 주위의 비난을 동반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하고 싶은 말도 마음 속에 담아 놓게 하고, 무언가를 할때 주변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게 만든다. 체면을 차리고 점잔을 빼는 유교 문화의 일부분이 남아있는 건지 중,고등 학교 때의 교육 방식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많은 수의 한국 사람들이 수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나서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시로 전체를 판단 할 수는 없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들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지역, 사람들을 두고 생각해 볼때, 한국 사회 안에서의 사람들의 의식이 미국 보다 좀더 답답한 성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답답해 왔고 그래서 '답답해' 라는 표현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지금도 이렇다" 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볼때 우리는 영어에는 없는 '답답해' 라는 표현을 적절하게 잘 쓰고 있다 라고 볼 수 있겠다. ( 물론 미국 사람들도 답답할 때는 그들의 표현을 사용한다. what the hell are you talking about??? 이 되려나)
추가.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남녀 사이의 관계 라는 점도 주목해 볼 수도 있겠다. 남녀 간의 하고싶은 말, 행동을 전혀 못했던 사회 였기 때문에 답답한 정도로 보자면 그보다 답답할 수가 없겠다. ' 창내고자 창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로 시작하는 국어책에 나오는 시조(?)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