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들 2011. 7. 19. 07:28

우리나라


 10달 가까이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국제자원봉사단체에서 생활을 했고 couchsurfing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을 이용하면서 미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잠비크에 와서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나라'와 '우리나라'를 비교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한국 문화는 다른 나라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언어에서 부터 시작해서, 나이에 따른 상하 관계, 식사 문화, 소리에 대한 민감도 등 많은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만일 내가 단순히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목도모를 위한 자리에 있었다면 이런 문화의 차이에 대해 하하호호 웃으며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펀드레이징이나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이런 문화차이가 작지 않은 갈등을 초래하곤 했다. 오늘은 갈등에 대해서 설명 하기 보다는 문화의 차이점에 주목하면서 비교를 해 볼 생각이다.

 먼저 '나이에 따른 상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 이라 하며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 사람을 잘 대하는 문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만난 외국인 친구들도 한국의 이런 문화를 좋아했다.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한,두살의 차이 나는 사람에게도 태도가 똑같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한국을 나름 잘 알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의 눈에는 나이가 고작 한살 많은 사람이 우월한 위치에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행동의 결정권을 갖는 모습들이 몹시 이상했다고 했다. " 10살 차이도 아무 것도 아닌데 고작 1살 차이 가지고 그렇게 되는 거야?" 라는 말 한 친구의 말을 통해서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그동안 한번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당연하다고 여겨 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이런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왜 우리는 나이를 중요시 하고 그것에 따라서 결정되는 상하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까? '상하관계를 재빨리 인식해서 나이 많은 사람을 잘 모시고 동생들을 섭섭하게 하지 않는게 사회 생활을 잘하는 것' 이라는 문화는 보기에도 썩 좋지 않다.

 다음은 소리에 대한 민감도 이다. 나는 상당히 시원한 성격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행동들이 크고 거침 없으시다. 성격 뿐만 아니라 일도 시원하게 하셔서 뭔가를 맡으시면 놀라운 추진력으로 일을 진행시키신다. 이렇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아버지 처럼 행동하곤 했다. 문을 열거나 닫을때 크게 여닫으며 기분을 내고, 뜨거운 국물을 한사발 들이키고 나면 꼭 시원하게 "하아" 하고 소리를 내뱉곤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밖에서는 이런 습관이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전달되었다. 내가 남자답게 여닫는 다고 생각했던 문은 다른 이들에게는 깜짝 놀라는 소음이었고 기분 낸다고 뱉었던 소리는 식사중의 소음이었다. 특히 면류를 먹을때 다른 친구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었는데,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후루룩' 소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엄청난 소음으로 생각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제발 조용한 식탁에서  '후루룩' 소리좀 내지 말고 먹어달라는 부탁을 하던 브라질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나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재미 있던건 그 이후에는 나도 그런 소음을 의식하게 됐다는 거다. 다른 한국사람이 문을 꽝꽝 닫거나 소리를 내면서 먹을 때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럽,남미,미국계 친구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쩔수 없이 쥐죽은 듯이 밥을 먹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잠비크에 와서는 맨손으로 밥을 먹는 친구들 덕분에 다소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있다.  

 미국에서 펀드레이징을 했을때 나는 주로 남미 친구들과 함께 일을 했다. 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많이 있었고 가끔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생겼을 경우 바로 해결하지 않고 그것을 쌓아뒀을때 더 큰 갈등이 생기곤 했다. 한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문제를 말하지 않고 속에 쌓아두는 사람이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보통 남미나 미국 친구들은 한국 사람 보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에 더 익숙했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는 자신의 또렷한 의견을 말하는데에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불만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그것을 꺼내기 보다는 뒤에서 한국 사람끼리 얘기하고 그걸 쌓아두는 과정이 반복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보이지 않는 문제는 커져갔다. 사실 나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잘 못한다.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불만을 말하고 싶을 때에도 당당히 손들고 말하는게 왠지 모르게 두렵다. 뉴욕에 있었을 때 프랑스계 고등학교로 펀드레이징을 위해서 갔던 적이있다. "왜 우리가 당신들 펀드레이징을 도와야 하나요" 라고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1시간 동안이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다. 만일 한국에서 똑같이 했다면 대다수 학생들은 자거나 집중하지 않을 거고 이야기를 듣는 소수의 학생도 질문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문 하는 학생이 있다면 "쟤는 뭔데 저렇게 나대" 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자기 의견'을 또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튀는 사람'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 문화와 그에 따른 교육이 낳은 안타까운 결과 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한국과 미국 나이는 한살 차이라고 인식하는데 사실 미국과 한살 차이가 나는게 아니라 국제 나이와 한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 나라만 나이 계산을 다르게 하는 줄은 알지 못했다. 사실 산모 뱃속에 있을 때의 1년을 계산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많은 외국 친구들도 공감을 했다. 하지만 생일을 계산하지 않고 년도로 나이를 따지는 것, 1,2월 생은 빠른 생일 이라 해서 애매한 나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 되어야 하지만 외국에서 객관적으로 한국의 이런 문화들을 보면 나도 몹시 어색한 눈길을 보내게 된다. 혈액형에 대한 문화도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은 '혈액형'을 신봉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혈액형을 묻고 성격과 비교해가면서 그 사람을 특징 짓고는 한다. 그런데 남미 쪽에서 온 친구 말로는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쪽 친구들은 별자리로 사람의 성격을 추측하고 남녀간의 궁합을 본다고 한다. 모잠비크와 한국 간의 문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곳의 인사법은 악수인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에게는 한국처럼 왼손을 오른팔에 대면서 인사해야 한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 멀리까지 배웅나가고 손에 뭐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 서로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이 한국과 몹시 비슷해 보였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문화의 다양성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각 문화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생활양식이기 때문에 모두 존중 받아야 한다. 지금은 내가 외국에 나와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 인식하면서 그것에 대해 또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화들도 한국의 고유한 문화이고 한국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의 차이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인것 같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때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문화이든 나쁜 문화이든. 

 + )글을 다 쓰고 나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더 났다. 외국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A cup of coffee' 와 '커피 한잔' 만큼 다른 문화와 생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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