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들
2011. 10. 4. 07:47
내학점, 차선책
오늘은 비가 많이 왔다. 모잠비크에 온 이후로 두번째로 보는 비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힘차게 쏟아 내렸다. 비가 오면 기온이 조금 떨어져서 좋은데 모기가 많아져서 정말 힘들다. 말라리아 약을 여기서 한번도 먹지 않았는데 과연 남은 한달도 무사하게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물은 줄어들고 모기는 많아지고 있다.
매일 밤마다 새벽까지 인터넷을 이용하다가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불빛 없이 달빛에 의존해서 가는 길이다 보니 짧은 시간에도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달빛의 소중함이란!). 얼마 전에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했었다. 한가지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했던 것, 할 수 있었던 것들이 그다지 평범한 것들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서야 할 수 있던 것들이 많았다. 상당수의 경험들이 내 능력 보다 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들 이었는데 때마다 운이 따라줘서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 준 공통적인 요소를 한가지 찾았다. 얼마 전에 모잠비크의 달빛 아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그건 바로 내가 '학점'이 낮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2006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도 그 시기에 군입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재수까지 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입대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집에서는 ROTC를 지원하라고 권유했다. 경제학과이기 때문에 ROTC 경력을 쌓으면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였다. 그 당시 학점은 3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었다. 사실 1학년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음악을 그렇게 열심히 한 건 아니었는데 학점이 좋지 않았다. 공부를 왜,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별히 열심히 한 것도 없고 신나게 놀지도 못했는데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주변 친구로부터 ROTC가 되려면 최소한 학점이 3점이 되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듣고보니 지원을 했으면 붙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카투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마 학점이 넉넉했다면 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ROTC에 지원했었을 것이다. 결국, 학점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ROTC 가 아닌 카투사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만족할만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ROTC에 갔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두번째는 한미학생회의(KASC) 지원 할 때의 이야기다. 2009년 겨울은 내게 꽤 어두웠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하고 나서 누구나 한번쯤은 거치는 과정 같기도 하다. PD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고 준비 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지원하는 곳마다 족족 떨어졌다. 재미 있는게 정말 족족 다 떨어졌다. 이름 있는 방송국 인턴에서부터 학교 인턴, 도서관 위원회 알바, 좋아하는 밴드 홈페이지 관리자까지 한개도 빠짐없이 다 떨어졌다. 그러다가 EBS에서 이틀 동안 일하는 단기 FD를 모집하는 글을 봤다. 단기 알바까지 떨어지면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것 같아서 정성스럽게 지원서를 작성해서 냈다. 그리고 2주일에 한번씩 EBS 모여라 딩동댕 녹화때마다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해 겨울에는 또 외대에서 KASC 홍보 포스터를 봤다.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두 차례나 홍보 세미나에 참여 했었다 (그만큼 그해 겨울은 할일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 만큼은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을 아무런 성과 없이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원 조건 중에 '학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원자의 아카데믹한 면을 평가하는 요소였다. 날고 기는 지원자들이 넘칠 게 뻔한데 내 초라한 이력서, 학점을 내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학점 좋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특별한 걸 보여준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비디오 였다. 내가 선택한 주제인 한미동맹관계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잘 만든다면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고 이력서를 쓰고 이것 저것 준비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쟁쟁한 사람들을 재치고 선발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군생활을 했던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KASC에 지원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지원 준비는 시작했고 시작한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EBS 녹화가 대구에서 있을 거라는 연락이 왔다. EBS 차량을 타고 가는 거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후임에게 연락해서 부대 내에 방문했고, 같이 군생활을 했던 미군도 인터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초에 제3회 한미학생회의 합격 연락을 받았다. 카투사는 순전히 운에 의해서 선발 된 거지만 KASC는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인해서 뽑혔던 것이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 학점이 좋았다면 그 해 겨울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일을 하면서 만족했을 것이다. 하루 일하는 EBS 단기 알바에 정성껏 지원서를 작성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KASC에 목숨걸고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KASC 지원 때문에 혼자 기차 타고 대구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번째는 Africa 다. 난 대학생활을 하면서 남들은 다 한번씩 가는 교환학생을 가지 못했다. 전역하고 나서 내가 가졌던 F 학점들을 전부 다 재수강을 했었어야 하는데 내 부주의함과 교수의 실수로 인해서 그 기회를 날려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환학생 대신에 어학연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KASC 를 마치고 나서 미국으로 다시 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알아 보았다. 가장 끌렸던 것은 D.C. 에 있는 주미한국대사관 인턴 자리 였다. 운이 좋아서 인턴 책임자에게 직접 연락하고 서류절차를 통과 했는데 비자 문제 때문에 결국 갈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건 이력서 몇 줄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끌렸던 건 한미 정부가 함께 추진하는 WEST 프로그램이다. 사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학점이 0.1점이 모자라서 지원할 수 없었다. 그 때는 참 내가 한심했다. 그러다가 네이버에서 IICD를 알게되고, 지금 나는 모잠비크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점 때문에 교환학생을 못 갔고, 대신에 가려던 WEST 도 못갔지만 지금 나는 최적의 환경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며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학점이 부족해서 차선책에 차선책들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최선책을 선택했을 때 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의 결과와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학점이 좋아서 교환학생을 갔다면 지금 또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내 안좋은 학점이 언젠가는 다시 내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지못해서 선택한 길이지만 내가 그 길에서 최선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내가 했던 노력들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버지 친구분 중에서 한국에서 가장 큰 시합용 요트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 팀 드레이크 라는 이름의 배인데 그 선장님이 늘상 하시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난다.
"최선책이 안되면 번개같이 최선의 차선책을 찾아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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