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들
2011. 10. 31. 10:10
위기는 기회일 수 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다 라는 말을 쉽게 듣곤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경험들을 되돌아 봤을 때 위기는 나에게는 언제나 기회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하려는 일에 위기가 닥쳤을 때가 바로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주위의 뛰어난 친구들과 비교해봤을때, 난 꼼꼼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적은 편이고 동시에 그에 대한 준비도 늦다. 어쩌면 나에게 위기가 닥치고 그걸 이겨가면서 내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평소에 제대로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건 준비가 부족해서 닥치는 위기 보다도 일을 진행할 때에 예고 없이 닥치는 위기이다.
위기를 기회로 잘 살려서 일을 성공시킨 예를 생각 하면 몇 가지가 생각이 난다. 사실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일을 할때는 언제나 위기가 한번씩은 찾아오곤 했다. 첫번째는 군대에서 시니어 카투사로 일했을 때다. 처음 시니어 카투사가 되었을 때는 다른 카투사들에 비해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후임들 앞에서는 멋진 시니어 카투사로서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늘 영어를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다음 시니어 카투사가 일을 시작할 시기 즈음이었다. 미군 행사에 시니어 카투사가 나와서 한 시간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난 그 당시 수백명이나 되는 미군들을 앞에 두고 혼자 나와 당당하게 영어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난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한국군 지원대장에게 나보다 영어를 더 잘했던 다음 시니어 카투사가 이 프레젠테이션을 맡는 게 어떠냐고 말을 했었다. 새 시니어 카투사 소개도 되고 프레젠테이션도 더 잘 되지 않겠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원대장은 내가 하기를 바랬고 프레젠테이션도 분량을 줄여서 그 당시 한국군 지원단이 홍보하고 있던 내용만 말하기를 바랬다. 15분 정도의 프레젠테이션 이었다. 결국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난 이걸 유종의 미라고 생각했다. 난 어설프게 종이 보면서 읽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하는거 완벽하게 연습해서 멋진 시니어 카투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영상을 포함해서 15분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 새벽 3시까지 끊임없이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당일.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덜덜 떨렸던 다리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막상 일어서서 말하기 시작하니 그 이후에는 술술 잘 풀렸다. 연습을 많이 해서 일 것이다. 별 실수 없이 무사히 행사를 잘 마쳤다. 다양한 계급의 수많은 미군들 앞에서 자신있게 영어로 발표를 하는 기회와 함께 동기, 후임들 앞에서 멋진 시니어 카투사로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아마 다음 시니어 카투사에게 이 일을 미뤘다면 분명 그 친구의 발표를 보면서 난 후회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두번째는 한미학생회의 final forum 전날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이다. 나는 미디어 그룹에 속해서 한달간 그룹원들과 함께 한,미 관계 안에서의 미디어의 의미,역할에 대해 토의를 했었다. 각자 한국, 미국에서 준비해 온 레포트를 발표하고 공통점과 차이점 들을 비교, 정리 해서 하나의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final forum 전날 밤 10시. 그룹장이었던 지현이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툭 던졌다. "나 예전에 발표 할 때 한번 뉴스 형식으로 해본 적 있어". 그 말을 듣자 마자 나를 포함해서 몇몇 그룹원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만든 발표를 뉴스 형식으로 해서 사회자 두명을 앞에 두고 뒤에서는 레포터가 발표하는 식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다들 그 의견에 대해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미디어 그룹이니 그 형식의 발표가 그룹의 성격과 아주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날 밤 10시에 갑자기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뒤집어 버리는 건 무리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몇 있었다. 기존에 했던 걸로 해서 완성도를 높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 문제에 대해서 논쟁아닌 논쟁을 하다보니 어느덧 10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다수결을 통해 양쪽의 의견을 모두 취합해서 현실적인 방안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즉 뉴스 형식으로 틀을 바꾸되 기존 내용은 유지하자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컴퓨터 영상 관련 파트를 맡았던 나와 지현이는 새벽 5시까지 작업을 했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지현이가 아빠다리로 바닥에 얼굴을 쳐박고 자던 게 생각이 난다), 일어나서도 모든 팀원들이 자기 파트 대본을 수정하고 다시 외워야 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 못했던 점은 1시간 분량의 영상을 export 하게 되면 2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열린 final forum의 2번째 발표 순서였던 우리 팀은 어쩔 수 없이 제일 마지막 순서로 옴기고 영상이 export 되기만을 기다렸다. 지현이가 걱정을 많이 헀다. 모니터에 나와있는 시간 보다 더 걸리면 결국 우리는 발표도 못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만든 배에 바람이 불어줬고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리허설도 한번 못하고 발표를 했기 때문에 다소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발표를 마치고 많은 팀들이 우리가 1등을 할 거라고 예상했을 정도로 우리팀의 발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발표를 했다는 점이다. 만일 완성도가 떨어질 걸 우려해서 다들 좋아하던 아이디어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그저 그런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룹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데에 두려움을 갖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뭉쳐 최고의 발표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번째는 바로 이곳 모잠비크에서 공연 준비를 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에게 기타와 파워포인트를 가르쳐서 두가지를 발표하는 공연 겸 발표회를 가지면 좋겠다' 라는 아이디어로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폭발적이었던 아이들의 반응이 얼마 가지 않아 시들해져 버렸다. 아마 무언가를 배울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어려움'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아이들의 이런 점들은 모두 내게 부담으로 남겨졌다. 점점 지쳐가고 열정도 사그러들어 갔다. 하지만 내가 공연 경험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연 준비는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이들은 내 기준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만 나까지 의욕을 잃거나 필요 이상으로 지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을 모두 소유해서 내 기준에 맞추기 보다는 일단은 두고 보자. 잘 따라오는 아이들은 맞춰서 잘 지도하고 잘 못 따라 오는 아이들은 내가 좀 더 다가가자. 다만 절대 열정을 잃지는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기다렸다. 아이들이 시간약속을 지키지는 않지만 공연을 하기로한 약속은 머리속에 넣어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부족한 아이들을 따로 낮에도 불러서 일일이 가르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 측에서 날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학비를 내지 않아서 집에 보내 학비를 가져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측의 재정 문제에 관한 것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날짜를 옴기거나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생기고 나니 학생들이 갑자기 활발해졌다. 나 혼자 고민 하던 것들을 학생들이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같이 회의를 하고 같이 초대장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더 초대했다. 공연이란 것을 제대로 본적도 없어 개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발표회였다. 그런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 하려고 하니 지도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공연 당일날 까지도 약속 장소,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공연은 한마음으로 잘 치뤄냈다.
'위기는 기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새벽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떠올랐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되돌아 보니 위기가 있었기에 내 자신이 더 발전할 수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평소에는 5의 속도로 걷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야하면 8 혹은 10의 속도로 걷게 된다. 화장실 예가 좀 그렇다면, 위기는 내가 페이스북에서 아무 이유없이 허비하는 시간을 없애줄 수 있다.
위기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빠르고 날카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기회는 미리 미리 준비해서 얻을 수 도 있지만 내게 찾아온 위기를 뒤집어서 얻어낼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의견은, '위기는 나를 좀 더 열정적이고 생산적이게 만드는 기회이다'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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